- | 수정 : 2016.08.29 14:35
'건설투자' 제외하면 작년 성장률 2.6% 아닌 2.4%로 추락
부동산에 자금 쏠림 현상…가구당 순자산 74%가 부동산에
지난 25일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대책 발표 이후 부동산 시장이 오히려 더욱 끓어오르고 있다. 분양 아파트의 모델하우스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몰리고, 서울 강남발(發) 재건축 투자 열기는 목동·노원 등으로 계속 번지고 있다. 당초 시장은 투기 수요와 집단대출을 억제할 수 있는 분양권 전매 제한 등 '강력한 대출 수요 억제책'을 예상했지만, 이번 정부 대책에 '알짜 대책'은 없었다. 이에 그동안 주택 구입을 망설였던 수요자·투자자들을 시장으로 밀어넣고 있다는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왜 정부는 머뭇거리는 걸까. 왜 이런 결정을 내려야만 했을까.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부동산'과 '빚'으로 성장하는 나라가 된 것일까.
지난 25일 정부가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은 후 금융 전문가들은 웅성거렸다. "가계부채 대책이 아닌 부동산 대책 같다"(하준경 한양대 교수), "부동산 가격 하락을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신호"(전성인 홍익대 교수), "지금 상황에서 부동산 경기를 유지하는 게 맞는 지 의문"(김상봉 한성대 교수) 등의 비판이 터져나왔다. "가계부채는 운에 맡기겠다는 것"(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이라는 지적마저 제기됐다. 발표 내용이 '가계부채 축소'라기보다는 '부동산 부양'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주택 공급을 줄여서 집사기 위해 돈을 빌리는 수요를 줄이겠다는 대책인데, 공급을 줄이면 주택 가격은 올라간다. 가격이 올라갈 경우 그만큼 돈을 더 빌릴 수도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가계부채 축소 대책이 될지는 의문이다.
이를 놓고 우리 정부가 결국 '부동산 없이 경기를 살리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 2분기 3% 내외로 집계된 우리 경제 성장률은 부동산 건설을 빼놓고 보면 분기 1%대로 떨어진다.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선 부동산 경기 하락을 감수하고서도 가계부채를 줄이는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기 힘들다는 것이다. '부동산' 경기를 유지하고 '빚'을 내야 그나마 성장률 수치가 나오게 됐다는 얘기다.
◆ 건설투자 없이는 쪼그라드는 성장률
한국은행은 지난 25일 6월 말 기준으로 가계부채가 1257조3000억원이라고 밝혔다. 가계부채가 1250조원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상반기에만 54조2000억원이 늘었다. 이 속도라면 올해 연말까지 100조원이 넘는 가계 빚이 새로 쌓여 가계부채는 1300조원을 돌파할 것이 확실시된다.
그러나 가계부채 억제 대책은 의외로 약했다. 공공 택지 공급을 축소하고 분양 보증 심사를 강화하는 등 주택 물량 공급을 억제한다는 골격으로, 서울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투기 수요 및 집단대출을 억제할 수 있는 분양권 전매 제한, 중도금 집단대출에 대한 총부채상환비율(DTI) 적용 등 시장 일각에서 거론됐던 강력한 주택 대출 억제 대책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통계를 보면 정부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지난 상반기(1~6월) 건설 투자는 전년보다 10.1% 증가했다. 수출과 수입, 내수 모두 죽을 쒔지만 건설업과 부동산 경기만은 예외였다. 그 결과 상반기 성장률은 3.0%로 예상보다 선전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서 건설투자와 국내총생산(GDP)을 상관관계를 분석해 보면 답은 더 확실해진다. 지난해 성장률은 '건설투자' 부분을 빼면 2.6%에서 2.4%로 줄어든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1분기와 2분기 성장률(전년동기대비) 2.8%와 3.2%은 건설투자를 제외하면 각각 1.9%로 쪼그라든다.
한은이 지난달 공개한 '최근 건설투자 수준의 적정성 평가'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건설투자의 비중이 여타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건설투자 비중은 2013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인구 대비 국토 면적이 넓은 호주(17.0%), 캐나다(16.8%), 노르웨이(15.9%)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2013년 미국이 7.4%, 일본이 10.3%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4.9%로 미국의 2배가 넘는다. 건설 부문에 투자된 자본의 누적 개념인 건설자본스톡도 GDP의 2.8배로 선진국인 주요 7개국(G7) 평균과 같은 수준이다. 사실상 부동산이 우리 경제성장률을 지탱하고 있는 셈이다.
이찬우 기획재정부 차관보가 지난 25일 가계대책 브리핑에서 "분양권 전매 제한은 둔탁한 규제로 주택 시장이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고, 도규상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이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을 강화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건설업의 활황이 아니었다면 작년 경제성장률은 1%대였을 수도 있었다"며 "정부로서는 부동산과 건설업 경기 진작을 통한 성장률 상승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 가계 빚과 부동산 경기는 상관관계 높아
가계부채는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말인 2007년 630조원이던 부채 규모는 채 9년이 안 돼 꼭 두 배로 불어났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 중반인데, 가계부채 증가율은 10%를 넘볼 기세다. 정부가 고정금리와 원금 분할상환을 골자로 하는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 조치를 올해 2월 내놓았지만 가계부채는 2분기(33조6000억원)에 1분기(20조6000억원)보다 많이 늘었다.
가계부채는 왜 이렇게 가파르게 증가하는 걸까. 1.25%라는 사상 최저금리는 은행 문턱을 낮아지게 만들었지만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수익을 낼 확실한 투자처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부동산이다. 사회 전 분야에 경기 한파가 몰아치고 있지만 부동산 경기만은 아주 나쁘지는 않다. 낮은 금리에 빚을 얻어 부동산에 투자를 하면 대출금리보다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이 사회 전체에 퍼져 있는 것이다.
올해 저(低)금리 기조 속에서 서울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과열 징후는 뚜렷했다. 부동산 거품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6년 시세를 넘어섰다. 서울 강남·송파·양천·강동구 대단지 재건축 아파트값은 한국은행이 6월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하자 한 달도 되지 않아 1억원이 넘게 올랐다. 3.3㎡당 분양가 5000만원인 아파트도 강남권을 중심으로 등장했다. 이에 올 1~5월 서울 분양권 거래 건수는 2830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1년 같은 기간 641건보다 4배 많은 수준이다.
실제로 한국 가계는 자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지난 6월 발표한 '2015년 국민대차대조표(잠정) 작성 결과'를 보면, 우리 가구당 자산의 4분의 3 가량은 집, 토지 등에 몰려 부동산 쏠림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가구가 갖고 있는 순자산 규모는 3억6152만원으로 조사됐는데, 건설·토지 등 부동산 자산이 지난해 가계 순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3.9%에 달했다. 이 비율은 2013년 75.4%, 2014년에도 74.6%를 기록했다. 저금리 기조 속에 빚을 내 '불패 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부동산에 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기조 속에 국내 가계의 대표적 자산인 주택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3519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GDP의 2.26배에 달하는 수치다. 2001년 1.53배에서 크게 늘었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가계부채도 부동산에 쏠려 있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2분기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총 19조원으로 전체 가계 빚 증가액의 56.5%를 차지한다. 주택담보대출 중에서도 가계대출 급증세를 이끄는 건 집단대출(신축·재건축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에 대한 대출)이다. 집단대출은 상반기에만 11조9000억원이 늘어났다. 상반기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의 22%에 육박한다.
정부는 가계 자산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에 투자돼 있는 상황에서 자칫 가계부채를 죄어 부동산 경기가 급랭되면 경제 전체가 가라앉을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집값을 떠받쳐 경기의 불씨를 지펴 나가려면 가계부채 문제는 악화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경기 급랭을 피하는 것이 더 급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 빚으로 경기 진작시키는 정책 한계 부딪쳐...가계부채 폭등·소비절벽 부작용 낳아
가계부채 급증과 부동산 경기 활성화가 동전의 앞뒷면처럼 된 것은 정부의 정책에서 출발한다.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완화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으로 경기를 진작시키는 방안을 쏟아냈다. 재당첨 제한 폐지(2012년 9월), 수도권 전매제한 완화(2014년 3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2014년 7월) 조치가 잇따랐다. 특히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지난 2014년 7월 DTI 완화 등을 통해 가계대출을 확대하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대출 문턱을 낮춰서 부동산 경기를 살려 보려는 의도였다.
정부의 기대대로 얼어붙었던 건설 시장에는 한동안 훈풍이 불었다. 신규 분양과 재건축이 늘어나면서 부동산 거래는 늘어났다. 하지만 부작용도 동시에 커졌다. 가계대출이 급증세를 보였다. 빚더미에 빠진 가계는 소비를 줄였고, 내수는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물건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으니 기업 매출도 뒷걸음질하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부채의 덫에 빠져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자, 이번에는 가계부채를 줄여야 하는 일이 다급해진 것이다.
통계에서도 이런 정책의 부작용은 확인된다. 바로 '소비 절벽' 현상이다. 가계는 부채가 늘자 씀씀이를 줄였다. 지난 19일 통계청이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2분기 평균소비성향은 70.9%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7%포인트 하락했다. 통계청이 관련 통계를 발표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평균소비성향은 2010년 말 77.8%에서 꾸준히 하락 추세다.
더 큰 문제는 저소득층 뿐만 아니라 중산층도 과도한 부채 속에 지갑을 닫고 있다는 데 있다. 통계청 발표를 소득분위별로 보면 2~4분위의 평균소비성향은 모두 하락했다. 소득 하위 20~40%에 해당하는 2분위의 평균소비성향은 79.7%로 3.5%포인트 낮아졌다.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3분위는 3.7%포인트 하락한 75.4%, 4분위는 1.5%포인트 떨어져 70%를 기록했다. 반면 1분위는 5.4%포인트 상승한 107.0%, 5분위는 1.7%포인트 오른 59.7%였다. 사실상 고소득층을 제외하고는 모든 계층이 소비를 줄이고 있는 셈이다. 결국 가계부채가 내수 침체의 한 원인이 된 것이다.
정부는 가계부채 보다는 부동산 경기를 살리는 선택을 했지만 이른바 '부채에 기댄 경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한국이 직면한 역풍 중 하나로 높은 가계부채를 꼽았다.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우리 경제의 리스크 중 하나로 높은 가계부채를 지적했다.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은 해외 주요국과의 비교를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지난해 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가처분소득(전체 소득에서 세금·연금 등 고정적으로 떼가는 돈을 뺀 가정의 실제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64.2%다. OECD 23개국 평균(130.5%)보다 30%포인트 이상 높다. 유로존 금융 위기의 진원지로 꼽히는 '피그스(PIGS: 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국가들보다도 20~70%포인트가량 높은 수치다.
남주하 서강대 교수는 "저금리 기조에서는 소비와 투자가 활성화 돼야 하는데, 지금은 부동산 쪽으로만 돈이 흘러가고 있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유동성 자금이 부동산으로 가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추후 미국의 금리 인상 등 충격이 생겨도 경제 전체적으로 타격을 덜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에 자금 쏠림 현상…가구당 순자산 74%가 부동산에
지난 25일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대책 발표 이후 부동산 시장이 오히려 더욱 끓어오르고 있다. 분양 아파트의 모델하우스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몰리고, 서울 강남발(發) 재건축 투자 열기는 목동·노원 등으로 계속 번지고 있다. 당초 시장은 투기 수요와 집단대출을 억제할 수 있는 분양권 전매 제한 등 '강력한 대출 수요 억제책'을 예상했지만, 이번 정부 대책에 '알짜 대책'은 없었다. 이에 그동안 주택 구입을 망설였던 수요자·투자자들을 시장으로 밀어넣고 있다는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왜 정부는 머뭇거리는 걸까. 왜 이런 결정을 내려야만 했을까.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부동산'과 '빚'으로 성장하는 나라가 된 것일까.
지난 25일 정부가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은 후 금융 전문가들은 웅성거렸다. "가계부채 대책이 아닌 부동산 대책 같다"(하준경 한양대 교수), "부동산 가격 하락을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신호"(전성인 홍익대 교수), "지금 상황에서 부동산 경기를 유지하는 게 맞는 지 의문"(김상봉 한성대 교수) 등의 비판이 터져나왔다. "가계부채는 운에 맡기겠다는 것"(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이라는 지적마저 제기됐다. 발표 내용이 '가계부채 축소'라기보다는 '부동산 부양'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주택 공급을 줄여서 집사기 위해 돈을 빌리는 수요를 줄이겠다는 대책인데, 공급을 줄이면 주택 가격은 올라간다. 가격이 올라갈 경우 그만큼 돈을 더 빌릴 수도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가계부채 축소 대책이 될지는 의문이다.
이를 놓고 우리 정부가 결국 '부동산 없이 경기를 살리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 2분기 3% 내외로 집계된 우리 경제 성장률은 부동산 건설을 빼놓고 보면 분기 1%대로 떨어진다.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선 부동산 경기 하락을 감수하고서도 가계부채를 줄이는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기 힘들다는 것이다. '부동산' 경기를 유지하고 '빚'을 내야 그나마 성장률 수치가 나오게 됐다는 얘기다.
- ▲ 조선DB
한국은행은 지난 25일 6월 말 기준으로 가계부채가 1257조3000억원이라고 밝혔다. 가계부채가 1250조원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상반기에만 54조2000억원이 늘었다. 이 속도라면 올해 연말까지 100조원이 넘는 가계 빚이 새로 쌓여 가계부채는 1300조원을 돌파할 것이 확실시된다.
그러나 가계부채 억제 대책은 의외로 약했다. 공공 택지 공급을 축소하고 분양 보증 심사를 강화하는 등 주택 물량 공급을 억제한다는 골격으로, 서울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투기 수요 및 집단대출을 억제할 수 있는 분양권 전매 제한, 중도금 집단대출에 대한 총부채상환비율(DTI) 적용 등 시장 일각에서 거론됐던 강력한 주택 대출 억제 대책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통계를 보면 정부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지난 상반기(1~6월) 건설 투자는 전년보다 10.1% 증가했다. 수출과 수입, 내수 모두 죽을 쒔지만 건설업과 부동산 경기만은 예외였다. 그 결과 상반기 성장률은 3.0%로 예상보다 선전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서 건설투자와 국내총생산(GDP)을 상관관계를 분석해 보면 답은 더 확실해진다. 지난해 성장률은 '건설투자' 부분을 빼면 2.6%에서 2.4%로 줄어든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1분기와 2분기 성장률(전년동기대비) 2.8%와 3.2%은 건설투자를 제외하면 각각 1.9%로 쪼그라든다.
한은이 지난달 공개한 '최근 건설투자 수준의 적정성 평가'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건설투자의 비중이 여타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건설투자 비중은 2013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인구 대비 국토 면적이 넓은 호주(17.0%), 캐나다(16.8%), 노르웨이(15.9%)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2013년 미국이 7.4%, 일본이 10.3%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4.9%로 미국의 2배가 넘는다. 건설 부문에 투자된 자본의 누적 개념인 건설자본스톡도 GDP의 2.8배로 선진국인 주요 7개국(G7) 평균과 같은 수준이다. 사실상 부동산이 우리 경제성장률을 지탱하고 있는 셈이다.
이찬우 기획재정부 차관보가 지난 25일 가계대책 브리핑에서 "분양권 전매 제한은 둔탁한 규제로 주택 시장이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고, 도규상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이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을 강화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건설업의 활황이 아니었다면 작년 경제성장률은 1%대였을 수도 있었다"며 "정부로서는 부동산과 건설업 경기 진작을 통한 성장률 상승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 가계 빚과 부동산 경기는 상관관계 높아
가계부채는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말인 2007년 630조원이던 부채 규모는 채 9년이 안 돼 꼭 두 배로 불어났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 중반인데, 가계부채 증가율은 10%를 넘볼 기세다. 정부가 고정금리와 원금 분할상환을 골자로 하는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 조치를 올해 2월 내놓았지만 가계부채는 2분기(33조6000억원)에 1분기(20조6000억원)보다 많이 늘었다.
- ▲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바로 부동산이다. 사회 전 분야에 경기 한파가 몰아치고 있지만 부동산 경기만은 아주 나쁘지는 않다. 낮은 금리에 빚을 얻어 부동산에 투자를 하면 대출금리보다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이 사회 전체에 퍼져 있는 것이다.
올해 저(低)금리 기조 속에서 서울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과열 징후는 뚜렷했다. 부동산 거품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6년 시세를 넘어섰다. 서울 강남·송파·양천·강동구 대단지 재건축 아파트값은 한국은행이 6월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하자 한 달도 되지 않아 1억원이 넘게 올랐다. 3.3㎡당 분양가 5000만원인 아파트도 강남권을 중심으로 등장했다. 이에 올 1~5월 서울 분양권 거래 건수는 2830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1년 같은 기간 641건보다 4배 많은 수준이다.
- ▲ 조선DB
한 가구가 갖고 있는 순자산 규모는 3억6152만원으로 조사됐는데, 건설·토지 등 부동산 자산이 지난해 가계 순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3.9%에 달했다. 이 비율은 2013년 75.4%, 2014년에도 74.6%를 기록했다. 저금리 기조 속에 빚을 내 '불패 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부동산에 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기조 속에 국내 가계의 대표적 자산인 주택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3519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GDP의 2.26배에 달하는 수치다. 2001년 1.53배에서 크게 늘었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가계부채도 부동산에 쏠려 있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2분기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총 19조원으로 전체 가계 빚 증가액의 56.5%를 차지한다. 주택담보대출 중에서도 가계대출 급증세를 이끄는 건 집단대출(신축·재건축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에 대한 대출)이다. 집단대출은 상반기에만 11조9000억원이 늘어났다. 상반기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의 22%에 육박한다.
정부는 가계 자산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에 투자돼 있는 상황에서 자칫 가계부채를 죄어 부동산 경기가 급랭되면 경제 전체가 가라앉을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집값을 떠받쳐 경기의 불씨를 지펴 나가려면 가계부채 문제는 악화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경기 급랭을 피하는 것이 더 급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 빚으로 경기 진작시키는 정책 한계 부딪쳐...가계부채 폭등·소비절벽 부작용 낳아
가계부채 급증과 부동산 경기 활성화가 동전의 앞뒷면처럼 된 것은 정부의 정책에서 출발한다.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완화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으로 경기를 진작시키는 방안을 쏟아냈다. 재당첨 제한 폐지(2012년 9월), 수도권 전매제한 완화(2014년 3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2014년 7월) 조치가 잇따랐다. 특히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지난 2014년 7월 DTI 완화 등을 통해 가계대출을 확대하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대출 문턱을 낮춰서 부동산 경기를 살려 보려는 의도였다.
정부의 기대대로 얼어붙었던 건설 시장에는 한동안 훈풍이 불었다. 신규 분양과 재건축이 늘어나면서 부동산 거래는 늘어났다. 하지만 부작용도 동시에 커졌다. 가계대출이 급증세를 보였다. 빚더미에 빠진 가계는 소비를 줄였고, 내수는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물건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으니 기업 매출도 뒷걸음질하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부채의 덫에 빠져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자, 이번에는 가계부채를 줄여야 하는 일이 다급해진 것이다.
통계에서도 이런 정책의 부작용은 확인된다. 바로 '소비 절벽' 현상이다. 가계는 부채가 늘자 씀씀이를 줄였다. 지난 19일 통계청이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2분기 평균소비성향은 70.9%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7%포인트 하락했다. 통계청이 관련 통계를 발표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평균소비성향은 2010년 말 77.8%에서 꾸준히 하락 추세다.
- ▲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정부는 가계부채 보다는 부동산 경기를 살리는 선택을 했지만 이른바 '부채에 기댄 경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한국이 직면한 역풍 중 하나로 높은 가계부채를 꼽았다.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우리 경제의 리스크 중 하나로 높은 가계부채를 지적했다.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은 해외 주요국과의 비교를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지난해 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가처분소득(전체 소득에서 세금·연금 등 고정적으로 떼가는 돈을 뺀 가정의 실제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64.2%다. OECD 23개국 평균(130.5%)보다 30%포인트 이상 높다. 유로존 금융 위기의 진원지로 꼽히는 '피그스(PIGS: 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국가들보다도 20~70%포인트가량 높은 수치다.
- ▲ 조선DB
남주하 서강대 교수는 "저금리 기조에서는 소비와 투자가 활성화 돼야 하는데, 지금은 부동산 쪽으로만 돈이 흘러가고 있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유동성 자금이 부동산으로 가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추후 미국의 금리 인상 등 충격이 생겨도 경제 전체적으로 타격을 덜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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